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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국내

11월 30일, 청와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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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악산 일원 - 명승 제67호

북한산 지맥의 한 봉우리인 백악산은 풍수지리에 따라 조선왕조가 도움을 정할 때 그 중심이 되는 산이었다.
일명 북악산으로도 불리지만 조선시대 주로 사용된 엣 지명을 따라 백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후기 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백악산도 에는 백악산의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왕조는 북쪽의 백악산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짓고 남쪽에 있는 남산을 감싸고 있는 곳에는 사람이 사는 터를 마련했다.
서쪽의 인양산, 동쪽의 낙산 등 네 개의 산을 연결해 한양도성을 쌓고 동서남북으로 4대문을 세웠다.
① 대은암 : 조선 중종매 기묘사화를 일으킨 남곤(1471~1527)이 집을 짓고 살았던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계곡의 바위 곳곳에 각자가 시켜져 있다
② 마애식불 : 바위에 새겨진 글자나 전통적인 양식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후대에 지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⑧ 부아암 :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의 바위. 일명 해태바위라 불리는데 해태는 화재나 재앙을 막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④ 촛대바위 : 일제강점기 민족의 정기를 끊고자 바위 위에 쇠말뚝을 박았으나 광복 후 쇠말뚝을 제거하고 촛대바위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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