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살아남기 위하여
정호승(1950~)
사람에게 절을 하지 않고
사람이 쓴 모자에게 절을 하고 살아남았다
사람에게 절을 하지 않고
사람이 앉은 의자에게 깊숙이 허리 굽혀 절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날 밤이면 첫눈이 내려도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되는 일이 더 힘이 들었다
훌륭한 남편이 되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들었다
한번은 모자를 집어던졌다가 내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다
의자를 집어던졌다가
내 다리가 고층 빌딩 창밖으로 내동댕이쳐질 뻔했다
다행히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이웃을 위해 언제나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눈 오는 날이면 새보다 먼저 눈길을 걸어가
내 슬픈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거리에 나가 하루 종일
빈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눈사람이 되기도 했다
반응형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 > 인문학과 고전 그리고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네르바의 부엉이 (0) | 2020.02.25 |
---|---|
바람에게 묻는다- 나태주 (0) | 2019.11.10 |
눈 감고 간다 - 윤동주 (0) | 2019.08.11 |
비가 내린후 펼쳐진 파란 하늘과 흰구름 (0) | 2019.06.07 |
우화의 강 - 마종기 (0) | 2019.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