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날게 하는법 - 이호준

닭을 날게 하는 법
                           이호준

닭은 절대 날 수 없다고 못 박는 건 심각한 오류다
닭에게 날개를 돌려주는 건
새마을금고에 저축한 돈을 찾는 것만큼 쉽기 때문이다
닭을 데리고 숲으로 가면 된다

오소리나 족제비나 들고양이가 사는 숲이 좋다
당신은 닭들을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저녁마다 빈 닭장 문을 닫아놓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기력이 쇠한 닭도 열외시킬 필요 없다
처음엔 몇 마리가 슬그머니 사라질 수 있다
숲에 수북한 닭털을 보며 슬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비극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날, 닭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장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며칠 뒤에는 눈을 비벼야 할 마큼 높이 난다
드디어 닭은 천적을 비웃기에 좋을 만큼 높은 곳에 깃든다
오래지 않아 다른 닭들도 날아오른다
군살이 빠지고 근육은 촘촘해지고 눈이 밝아지고
날개가 유연해지고 엉덩이 짱짱해진 닭에게
허공을 가르는 건 더 이상 무모한 도전이 아니다

다만 당신은 이때쯤 눈치를 채야 한다
숲에 깃든 닭은 더 이상 당신의 가금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새가 그렇듯, 당신의 식탁을 위한 알은
더 이상 낳지 않는다는 것을
텃밭에서 배추와 시금치 뽑아 식사를 준비하든지
고기를 얻기 위해 총을 사야 할지도 모른다
새의 시절로 돌아간 닭은
당신을 위해 알을 낳느니 총구 앞에 서기를 원할 테니까

시집<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
(천년의 시작,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