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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윤석정(1977~)
느닷없이 배달된 상자를 풀어보니
텃밭에서 자란 봄이 옹기종기
내게 반질반질한 연둣빛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 한 움큼 들어 올리니
상자에 동봉된 어머니 얼굴이 나왔다
텃밭에 무더기로 봄이 왔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글자의 퇴고도 없이
어머니는 빼곡하게 편지를 썼다
반나절 이렇게 편지만 썼을 것이다
통화 몇 초로 전할 수 없던 봄
내가 인연에게 밤새 편지를 쓴다한들
내 언어로는 완연한 봄을 쓸 수 없다
지금쯤 어머니는 텃밭에 글자들을 심어두고
여름편지를 쓸 준비에 바쁠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고 주근깨 같은 글자들이
봄볕에 그을린 어머니 얼굴에 박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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