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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눈길에도 두께와 밀도가 있다, 로와정, 2024. 06.05 - 07.06,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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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도 두께와 밀도가 있다
in the gaze lie thickness and density
로와정
Rohwajeong
2024. 06.05 - 07.06
학고재 갤러리

학교재의 로와정 개인전 〈눈길에도 두께와 밀도가 있다〉는 이미지에 대한 그의 오랜 사유가 담겨 있다. 이것은 특정 이미지를 맥락화 하거나 도구화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의 요소와 텍스트의 요소를 동시에 발화할 때, 언어와 세계 사이에서 유실된 것들을 회복하게 되는 '이미지성'에 관한 것이다.
입구에서 제일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2184>는 2184년의 달력과 세포의 이미지를 투명하게 중첩하여 몽타주 한 작업이다.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달력의 시간은 수많은 오류를 지니고 있고, 그 어긋남의 축적은 무엇도 확언할 수 없는 양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청되는 확언으로 우리를 이끈다. 로와정은 모든 인간에게 진리만큼이나 강력히 적용되는 어휘마저 그저 진리를 가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투명하게 겹쳐져 알아볼 수 없는 숫자의 이미지로 드러낸다. 그 대신 달력에는 의례 붙어 있기 마련인 위편의 '보기 좋은 이미지' 자리에, 분열하고 변이하며 연결되고 통합될 때만이 생동할 수 있는 세포 이미지들의 몽타주가 있다. 그리고 언어라는 특권 없이, 미시적 생명의 단위인 세포의 유기체적 세계가 2184년이라 불릴 그때 그날의 풍경에 관한 적확한 예감이 된다.
한편 이미지가 된 텍스트는 직접적인 독해에 노출되어 고정된 의미로 가두어진 석회화의 위험을 갖는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온전히 발현되고, 이미지가 텍스트로 유연히 발화될 때 이미지성은 위계 없는 관념과 결행하고, 경계 없는 메타포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커튼>은 텍스트를 둘러싼 의미의 망을 주름으로 대체하여 기표에 잠재하는 이미지를 외양화 한다.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주름인 <커튼>은 그 자체의 사물성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지시하면서도, 결코 맞아떨어질 수 없는 무한한 언어의 퍼즐을 갖게 된다. 언어가 지닌 의미의 망을 그대로 지닌 채 텍스트의 형태가 이미지로 탈바꿈되는 것은, 언어의 고정된 의미와 더불어 자유로운 이미지의 가역성을 동시에 보유하는 일이다. 로와정의 작업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수많은 우연성과 그 변이들의 결과이며, 이렇게 도출된 잠정적인 결과가 ‘이미지성'의 새로운 메타포가 되지만 이는 재차 새로운 변이로 이행될 준비를 한다. 이 과정은 인과나 위계가 아닌 일종의 자기의 배치와 자기의 극복이라는 문제와
이렇게 인과나 선후가 없이 포용되는 대응의 구조는 〈untitled (19May2024)>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구축주의의 엄밀한 구조적 매커니즘과 연계하며 제작된 이 작품은 구조물의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위한 지지대이자 영상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순환적 일원화의 구조는 양립불가한 개별과 보편의 공존과 같은 이상적이며 역설적인 존재의 메타포를 구축한다. 자아의 치밀한 논리와 타자의 예리한 반론, 그리고 자유와 구속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상태는 "공동의 위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할 때 가능하며, 영상의 구조물 혹은 구조물의 영상은 각기 다른 존재 이유를 지탱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 자아의 반영과 은밀한 연대성을 통해 세워진다. 이것은 이를테면 '눈길(gaze)‘의 두께와 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확고한 연대이면서 서로에게 현혹되지 않는 공동의 우연성을 통해 더듬어가는 메타포들로 볼 수 있다. 언어를 필요로 하면서도 이미지로 나타나는 이러한 이미지성은 마치 '눈길(snowy road)'과 같이, 풍경을 하얗게 덮어 눈부시면서도 그 아래 모든 것을 가린 것이기도 하다. 모자처럼 보이는 하얀 그것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품은 것일지 모르는 것처럼.
로와정의 작업은 언어를 이미지의 표면으로 이전시킬 때, 또 이미지를 언어의 마술로 끌어들일 때 발견되는 수많은 메타포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로와정이라는 기표에 관한 어떤 아이러니가 된다.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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