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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창신동의 달, 최진욱, 2024.03.14. -04.18, 아트사이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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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회색의 큰 붓 터치로 작업실 풍경을 그리고 있던 나는 그것을 리얼리즘보다 더 리얼한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하며, 1990년 7월 8일 작가 노트 말미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나도 넓은 세상을 그리고 싶다." 생각해보면 34세의 화가가 그때까지 작업실 안만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후, 화가는 과연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이것은 필연적 질문이라 하겠다. 사실은, 1990년 자신만만하게 <그림의 시작>을 그린 후, 1991년 겨울부터 나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느낌이 사라진 채 32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정말 인정사정 보지 않고 흐른다.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느낌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불과 수년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느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법론을 찾지 못한 것이다. 현실의 문제로 '피꺼소'의 상태가 되면 갑자기 10분 정도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 녹색, 청색, 회색 등 단색으로 그림을 그릴 때, 지루해지기 전까지 그림이 잘 되곤 했다. 전체 화면을 부분적으로 잘라서 그릴 때, 무의미함을 느끼기 전까지 그림이 잘 되곤 했다. 90-91년에는 그림 그리는 내내 생생하던 느낌이 왜 고작 10분 내외로 쪼그라들었는가. 2000년부터 약 7년간 이천 작업실에 일주일에 4번 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가서 단 한 획의 붓 터치도 그리지 못하고 오는 날이 생겼다.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이렇게 막히는 걸 보면 길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뭔가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렇게 깨달을 때마다 메모해두었다. 깨달음의 효력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다시 깨달음을 얻기까지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깨달음이 흐물흐물, 뉘엿뉘엿 사라지고 나면 다시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다시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기뻐했다. 92년부터 32년간, 대략 2주마다 깨달아 오늘까지 900개의 깨달음을 작업 노트에 적었다. 더러 겹친 것도 있고, 지금 봐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것들도 있다. (단순한 메모와 그림과 상관없는 깨달음도 20개 정도 있다.) 그러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로 깨달았다. 나는 내 그림이 우수한 건, 방법론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딸한테 자랑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방법이 발견되면 나는 잘 그리고, 그것의 효력이 다하면 다시 못 그리게 된다.
2024년 2월 16일 공사를 막 끝낸 아트사이드 3층에 미술도구를 옮기고, 그림은 2월 17일(토요일) 시작했고, 첫날 운 좋게 150호 M 두 장의 구도를 잡았다. 그동안 창신동을 그린 것처럼 인왕산을 그리면 되는데, 나흘 동안 맥 놓고 재현을 하다가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재현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추상, 문자 그대로 Abstract, 끄집어내야 한다.' 색이든 형태든. 리얼리즘도 그림이 되기 위해선 추상성을 얻어야 한다. 단순한 재현은 소위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요일 빼고, 닷새째가 되는 목요일 날, 일어나자마자 갤러리에 가려고 했는데, 창밖에 흰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버렸다. 갤러리에 와서 마치 화난 사람처럼 그림에 녹색을 칠하고, 인왕산에 눈이 쌓인 걸 그리기 시작했다. (전날 밤엔 인왕산을 '심해어'로, 인왕산 아래 집들을 '그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잘 되는 것 같았는데, 다음날, 그다음 날인 오늘까지 헤매고 있다. 문득 대학입시 보던 생각이 났다. 목탄으로 아폴로를 그리는데 점점 망해가던 기억. 하기야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그린 적이 없었다. 대략 한 달에 한 장 그렸는데, 일주일에 한 장을 그려야 하다니.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왕산을 눈앞에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마다할 화가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겸재! 겸재를 따라 인왕산을 그려본다는 흥분된 기분은 그림이 망해가는데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통조림처럼 변하지 않고. 나는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오히려 나는 그림을 그림일 수 있게 하는 일에 몰입해왔다. 미술이 미술일 수 있게.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만화와 다른 것. 앞의 세 가지와는 달리 '쓸모없는 것', 없어도 되는 것을 해야겠다는 자부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미술은 공모의 산물이고, 거짓말이고, 도박이다. 미술은 자본주의와 반대의 방향으로 간다. 미술은 돈 벌기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없어도 되는 것이기에, 허구이기에, 상상이기에 가치를 갖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돈을 향해 가지 않는 것이기에 미술은 진정한 미래의 가치를 가진다. 일단 그림이 망하진 말아야겠지만, 망하지만 않는다면 내 그림은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24년 2월 24일
최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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