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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바람속을 걷는 법 - 이정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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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2.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 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 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 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것,
바람이 드셀 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 지


3.

이른 아침, 냇 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 지,
허구 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 꽃으로 피어 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때면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 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4.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 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걷던 것을 혼자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 하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 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 오는
그 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 주는
내 마음 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 간 그 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 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 것이
다시는 풀 수 없는 까닭이 겠지만
밤 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 것들을
차례차례 재현 해 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란 것은
하나하나 맞이 했다가
떠나 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 날 사람은 떠 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 올리다
쓸쓸히 돌아 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 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5.

어디 내 생에
바람이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 왔고
그 때마다 나는 두리번 거리며
바람이 잠잠해 지길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 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 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 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 세게
몰아 닥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누가 나가 떨어지든 간에
한 판 붙어 보라는 뜻이다.

살다 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
내 걸어 온
모든 길이 바람 길 이더라.

(출처 :이정하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푸른숲, 1997)
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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