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는 신체에 대한 해체적인 표현으로 1980-1990년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키키 스미스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이다.
1994년에 제작된 작품 제목이기도 한 '자유낙하'는 스미스의 작품에 내재한 분출과 생동의 에너지를 의미하며, 여성 중심 서사를 넘어 범문화적인 초월 서사를 구사하는 작가의 지난 40여 년간의 방대한 작품활동을 한데 묶는 연결점으로 기능한다. 또한 파편화된 신체를 탐구하는 스미스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한편, 달이 지구를 맴도는 자유낙하 운동처럼 배회를 통해 매체와 개념을 확장해 온 작가의 수행적 태도를 동시에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기초하여 조각, 판화, 사진, 드로잉,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14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소개한다.
키키스미스가 예술에 입문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에이즈, 임신중절 등을 둘러싼 이슈를 필두로 신체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는 시기였다. 이 당시 스미스는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까지 차례로 겪으면서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은 해부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와 맞물리면서 스미스가 신체의 안과 밖을 집요하게 오가며 탐구하는 계기를 이룬다.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체 표현과 더불어 생리혈, 땀, 눈물, 정액, 소변 등 신체 분비물과 배설물까지 가감없이 다루면서 신체에의 비위계적 태도를 취한 스미스는 1990년대 미국의 애브젝트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나아가 2000년대 이후부터는 동물, 자연, 우주 등 주제와 매체를 점차 확장하여 현재까지도 경계에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 서사를 구사해오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신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단순히 여성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신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다층적 해석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전시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품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서사구조, 반복성, 에너지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세 가지 주제인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배회하는 자아,"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를 제안한다. 스미스는 본인의 예술 활동을 일종의 '정원 거닐기'라 칭했다.
이는 여러 매체와 개념을 맴돌며 경계선 언저리에서 사유하는 배회의 움직임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소외되거나 보잘것없는, 혹은 아직 닿지 않은 모든 생명에 대한 경의의 메세지를 담아 오늘도 작품으로 여실히 옮겨진다.
1980-199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굴곡을 유영해 온 스미스는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라고 말한다. 느리고 긴 호흡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귀 기울이며 상생의 메시지를 던지는 스미스의 태도야말로 과잉, 범람, 초과와 같은 수식어가 익숙한 오늘날 다시 주목해야 할 가치이다.
키키스미스의 작품은 가깝게는 개인적 경험에서부터 멀게는 민화, 설화, 신화, 고대역사, 문학 등 다양한 시공간을 포괄하면서 다층적 서사구조를 이룬다. 본 색션에서는 '너머의 것'을 탐구하는 작가의 시각, 그리고 수집된 일련의 파편들을 하나의 서사로 직조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작가는 성장배경인 가톨릭 외에도 불교, 힌두교, 무속신앙 등 다양한 범주의 종교적인 도상을 활용하였다. 또한 비가시적인 요소를 시각적 재현의 영역으로 불러내는 일을 예술과 종교의 공통분모로 보고, 이 교차점을 작업의 단단한 토대로 삼았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 화면 아래 모인 각각의 모티브는 스미스가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는 촉매제이자 중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매체의 사용에서도 나타나는데,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비주류 매체로 인식되던 종이, 취약성을 품은 유리나 테라코타, 미술의 영역에서 경시되어 온 공예와 장식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그 예이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이 일방적인 교훈으로 읽히지 않고, 보는 이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여백을 중시한다.
자유낙하
접힌 자국이 남아있는 종이 위에 벌거벗은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모습은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사진을 판화로 옮긴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인 키키 스미스 자신이기도 하다.
바닥에 누워 찍힌 사진 그대로 금속판에 옮겨 새긴 후 잉크로 찍어내 완성했다. 작가는 오래전에 만든 듯한 낡은 느낌을 내기 위해 금속판의 표면을 일부러 거친 사포로 문질러 꺼끌꺼끌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원래 이 작품을 평소에 접어서 보관하다가 작품을 볼 때는 조금씩 펴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유낙하>는 작품 제목이면서 동시에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품 속 작가의 모습을 표현하는 제목 같기도 하고, 아래로 펼쳐지는 작품의 특징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다. 작품 속 스미스의 모습은 아래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맴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어디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중일까?
어디를 맴돌고 있는 것일까?
스미스는 본인의 작품활동에 대해 '정원을 거니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면서 배회하는 움직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이는 뚜렷한 목적지를 향한 직진이 아닌,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맴도는 방랑자의 걸음을 상징한다.본 색션에서는 작가의 창작 활동에서 반복성이 함의하는 층위에 주목한다.성별을 배제하고 익명성을 강조했던 초기 신체 작업과 달리 1990년대 이후 스미스는 판화와 사진 매체를 접하면서부터 자신을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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