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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프로메테우스 - ‘먼저 생각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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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 ‘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1611-12),
독수리에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1. 서양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로마신화

프로메테우스(그리스어: Προμηθεΰς)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서는 티탄족에 속하는 신이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 선지자(先知者)'라는 뜻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 1세대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와 바다의 요정인 클리메네(혹은 아시아) 사이 탄생하였다. 그는 본디 티탄 신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흥미를 끈 사건이 그와 제우스 사이 벌어진 권력 다툼이다. 이 사건이 인간의 운명과 간접적으로 얽힘으로써 프로메테우스의 존재는 인류 문명사에서 신화적 해석을 하는 데 종종 언급한다.

헤시오도스 《신통기》에 따르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제물을 두고서 신과 협정 맺을 때, 소의 뼈를 가지런히 정렬하여 이를 윤기가 흐르는 비계로 감싸고, 살코기와 내장을 가죽으로 감싸 제우스 신에게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선택하게 하였다. 프로메테우스 계락을 간파한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류에게서 불을 빼앗아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꺼지지 않는 불을 회양목 안에 넣어 인간에게 몰래 주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행동한 뒤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보내고, 프로메테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발생하여 인류에게 재앙이 찾아오게 된다.

또 프로메테우스는 예언 할 능력을 갖추었는데, 제우스가 자신의 미래를 묻자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제우스의 분노를 사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게 되었다. 후일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그를 구해 주었다. 헤라클레스가 12과업을 할 때 아틀라스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 게 프로메테우스라고도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2. 서양 문화에서의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장면, 이 장면이 프로메테우스 신화 속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일 것이다.

루벤스는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육체를 파먹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날카로운 발톱은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을 짓누르고 그의 간은 바깥으로 나와 있다. 제우스의 상징인 독수리는 금방이라도 푸드덕 거릴 듯한 기세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예술 장르에서 창조적 예술가의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때 괴테, 바이런, 베토벤 등은 18세기에서 19 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변환 점에 놓여 있었던 예술가들이였다. 특히 이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과 신분 제도의 유리벽에 막혀있던 이들에게 꿈을 갖게 해줬을 것이다.

바로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을 발견했고 프로메테우스와 자신들을 동일시 했다. 또한 그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신이 만든 질서에 저항하고 반역한 것처럼, 금지된 것에 도전하는 계몽주의적 욕망을 통해 새 시대의 인간상이 성치취된다는 신화의 테마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프로메테우스의 도전은 신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건넨 불은 자유를 향한 의지의 상징이었고, 신화의 세계를 ‘탈신화화’하는 일이었다.

특히 베토벤은 19세기 예술가중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을 자신의 예술적 투쟁과 동일시했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을 1801년 작곡하였으며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시 ‘변주곡과 푸가’를 작곡했다. 그리고 이 주제는 1805년 ‘영웅교향곡’의 휘날레 악장의 주제가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분명 베토벤에게 새로운 길로 나가는 길목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1880년 빈의 베토벤 광장에 세워진 베토벤 기념비에는 오늘도 프로메테우스가 한켠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있다.
(출처 :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PO,March 2020Vol.171, 인간에게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허락한 고귀한 불씨, 정이은 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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