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가득한 2019.3.3일의 하늘은 해가 떠 있으나 의미가 없어 보였다. 미세먼지가 가득해 태양은 있으나 그 존재가 미미해 보였기에 미세먼지의 분포를 보여주는 화면을 확인하는게 분주한 일과중 하나였는데 우연히 ‘가만한 나날’을 발견했다.
처음엔 ’가난한 나날’인줄 알았는데...‘가만한’이었다. 책을 알라딘에서 바로 주문하였다.
가만한 나날 - P.112
예린 씨는, 사무실에서 노골적으로 찬밥 취급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일을 잘 못한다고 평가되는 것, 그것도 첫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한다고 낙인찍히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 반년 사이에 그녀의 얼굴은 놀랄 만큼 달라졌다. 내성적이지만 때로 굉장히 발랄하게 웃는 해맑은 사람이었는데, 자꾸 눈치만 살폈다. 회의에서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 팀장이 진행 상황을 물어보면 당황하며 대답조차 우물쭈물했다. 그녀는 업무뿐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자신감을 잃었다. ―「가만한 나날」
(출처) 알라딘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는 걸까.”명랑하고 간절하게, 싹싹하고 비굴하게
삶의 기쁨이자 슬픔인 인간관계와
동력이자 브레이크인 사회생활에 대하여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가만한 나날」 수록
2015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세희의 첫 번째 소설집 『가만한 나날』이 출간되었다.
『가만한 나날』은 연애, 취직, 결혼 등 사회초년생에게 막중한 과업이 된 사건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리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사회생활 보고서, 인간관계 관찰일지다. 수록된 8편의 소설에는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역할이 바뀔 때의 조바심과 주저함, 설렘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세희는 오랜 달리기에 지친 동료가 물이 필요하진 않은지 걱정하는 마라토너처럼 삶의 구간을 함께 걷고 뛴다. 우리가 관문처럼 한 시기를 통과할 때 마음속에 번지는 무늬가 혹시 눈물 자국은 아닌지 세심히 살핀다. 그 온기 어린 시선으로 짜인 소설을 읽고 우리는 곱씹게 될 것이다. 살며 수없이 겪었던 엉킨 관계들과 뒤섞인 마음에 대하여, 가만한 나날에 깃든 보편적인 슬픔에 대하여.
■연애 관계―언젠가 우리는 혼자가 될 거라는 예감
김세희가 그리는 연인들은 열렬하지 않다. 언젠가 열렬했던 적이 있었을 그들은 지금 복잡하고 아련한 마음으로 서로를 본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야」의 ‘진아’는 연하 애인 ‘연승’의 부탁으로 그가 우상처럼 여기는 선배의 집에 방문한 뒤, 연승과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는 애인 ‘루미’에게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함께 부양하자는 부탁을 할 수 없으며, 미래에는 자신도 버림받게 되리라고 예감한다.
「얕은 잠」의 ‘미려’는 연인 ‘정운’과 함께 서핑을 하다가 홀로 외딴 곳으로 떠내려가는데,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정운이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가 주목하는 삶의 한 시기는 바로 연애와 이별의 구간이다. 기나긴 연애를 끝내며 비로소 혼자는 길러진다. 우리가 언젠가 통과해야만 하는 이 구간은 필연적으로 힘들겠지만, 그때의 우리가 완전히 고독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얕은 잠」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미려가 난생처음 서핑보드에 올라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것처럼,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었지만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았던 것처럼.
연인에게 슬픔의 반을 위탁하지 않고, 절망의 원인을 찾지 않고 처음 세상을 ‘혼자’ 대면할 때의 슬픔과 기쁨. 김세희가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은 그 어렵고 벅찬 성장의 순간이다.
■회사 생활―어디까지 느껴야 하는지 짐작하는 일
『가만한 나날』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관계는 ‘회사’에 있다. 회사는 거대한 조직이고 그물망이지만, 그 조직도에 이름을 넣고 그물의 마디에 서 있는 것은 사람이다. 으레 하는 말처럼 회사는 ‘놀러오는 곳이 아니니까’, ‘개인적인 감정은 필요 없으니까’라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결국 그 공간에도 사람이 있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 감정이 생긴다. 작가는 인정받고 싶은 동시에 떠나고 싶은 상사에 대해, 기대고 싶은 동시에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동기에 대해 아주 가느다란 심의 연필을 쥔 것처럼 섬세하게 소묘한다.
「감정 연습」의 ‘상미’는 출판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된 ‘김태영’을 향해 자신도 모르는 지독한 악의와 미움을 느낀다. 「가만한 나날」에서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경진’은 가습기 살균제 ‘뽀송이’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이 거짓으로 후기를 작성한 일에 대해 상사가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에 실망한다.
「드림팀」의 ‘선화’는 엄마처럼 자신을 가르친 첫 상사 ‘은정’에게 애틋함과 지긋지긋함, 기대감과 배신감을 번갈아 느낀다. 회사라는 사슬의 작은 고리가 된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하는 것은 연필 속 흑심 같은 감정들이다. 무르고 번지더라도 쓴 자국이 남는 마음들.
우리는 그 연필 자국을 따라 지나갔거나 다가올 ‘첫’ 사회생활에 대한 각자의 채색을 하게 될 것이다.
(신샛별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 - ‘우리의 모든 처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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