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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춤, 리듬 같은 것만 남았으면 좋겠다."
강요배,『풍경의 깊이』 중
바람, 소리
그의 그림에는 바람과 소리가 있다. 그것들이 그려져 있다거나 재현되어 있다는 말보단 그냥 거기 있다고 써야 할 것이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기에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각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감각한다. 피부나 귀, 때로는 그것이 영향을 주는 다른 사물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물론 우리는 통상적으로 바람을 그리는 법을 알고 있다. 일기예보 같은 곳에선 간단한 아이콘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 우리 앞에 놓인 그림이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시각적 기호가 아니라, 역동적인 이미지이자 하나의 사물 이라는 점이다. 거친 붓질이 쌓여 만들어진 그 화면에는 바람이 담겼다가 소리가 담겼다가 또 구상적인 대상이 포착되었다가 가만 보고 있으면 다시 물감으로 흩어져 버린다. 요동치는 바다를 담은 화면이든, 고요한 하늘이 가득한 화면이든 그것은 도무지 가만히 있질 못한다. 리듬과 떨림이 발생한다. 캔버스에 얹혀진 물감이 움직일리는 없고, 움직이는 것은 내 쪽이다. 이리저리 몸과 눈을 실제로 움직이며 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가만히 보려고 해도 눈동자는 그림의 동세를 따라 끊임 없이 움직인다. 머릿속에선 눈이 보낸 이미지에 계속해서 상상을 깁고 더한다.
이렇게 보면 거기 있는 바람도 사실 나에게서 불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이 그림을 그렇게 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은 그렇게 연결 속에서 작동한다. 붓질 같은 물질로 환원되었다가, 담론 같이 관념적인 맥락으로 환원 되었다가를 춤추듯 반복하는 물질과 객체의 연결 속에서.
권태현(미술평론가), 『사람을 빼면 싹 빼면』 중
사물을 보는 법
시선을 유난히 끄는 것에는 새로움이 있다. 또한 그것에는 넓은 뜻으로 쓰이는 '맛'이 있다.
무미건조하지 않으며, 유별난 조화로움이 있다. 새로움은 외부 사물로부터 발산되는 듯하지만 내가 그것을 평소와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결정품처럼 눈에 강하게 띄는 것에는 골기를체와 운치화가 서려 있다. 정지한 사물이나 움직이는 사물 모두에 기운은 어떤 흐름으로 배어 있다. 사물의 기운생동 또한 사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감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특이한 구조와 배치를 지닌다. 사물을 이루는 그만의 구조와 사물 부분들의 배치는 시공간에서 다양하다. 이 또한 나와 사물 간의 상관적 관찰의 결과물이다. 이렇듯 유난히 눈에 띄는 것,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롭고 맛깔나며 기운이 살아 있고 그만의 구조와 배치를 갖는 것, 그것은 독특한 독자체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말들의 사전에 있는 사물의 이름들과는 다른 것이다.
당장의 뚜렷한 체험은 서서히 심적 여과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사물로부터 왔으되 나만의 시선 안에 있다. 나는 그것을 강렬한 요체로 간직하려 한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화하여 명료하게 만들려 한다.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그것들이 되살아난다. 멀리..·· , 또는 가까이.·.
파도- 소리-스침- 차가움- 힘-거-없음- 시원함- 부서짐- 휘말림 - 하얗게
- 검게 - 첩첩이 .
이 전체 속에 흐르는 기운.
형이나 색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그것!
(중략)
살아 있는 자연은 싱싱한데, 사진으로 옮기면 재미가 확 떨어져 버린다.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몸에 의해 뭔가 살아 나와야 하는데, 너무 사진 이미지에 의존하다 보면 오히려 놓치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자기도 모르는 것이 그림 안에서 우러나오는데, 그런 것은 그림만이 가질 수 있다.
예술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예술은 사회에 꼭 기여해야 한다'라든가 이런 것보다도.
오히려 자기 혼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그걸 제대로 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것도 어렵다, 사람한테는.
그런데 나를 알려면 나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게 나에게는 고향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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