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The Visible, The Invisible
송인옥 초대전 INOK SONG,
Invitational Exhibition
2023.07.21 - 08.09
[작가노트]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The Visible, The Invisible
바다는 멀리서 바라보면 잔잔한 표면이 마치 짙푸른 평원으로 보이고, 가로지른 물결이 수많은 선으로 모이고 모여 광활한 색면으로 다가온다. 조금 가까이서 내려다보면, 끝 모를 깊이에서 분출하는 수많은 점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쉴 틈 없이 움직이면서 금방이라도 나를 빨아들일 것만 같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점과 선과 면으로 가득하다. 자연에는 조형적으로 정말 아름다운 선, 점들이 지천이어서, 내가 아무리 애써본들 무심한 그 한 획을 이기지 못하겠다. 종종 작업할 의욕마저 상실하게끔 한다. 사람도 한 장 낙엽처럼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면서, 그저 내가 느끼는 감성과 분위기를 살려 보기로 했다.
매일 부딪치며 살아가는 삶의 흔적은 내 몸 구석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고, 나는 이 흔적을 틈날 때마다 화면 위에서 끄적거린다.
나의 그림에는 잔잔한 붓 터치와 간결한 선, 무심한 점 들이 가득하다. 어떤 터치들은 잠시 자리 잡고 있다가 이내 다른 터치로 덮여져 희미해져 간다. 희미해진 터치들은 끝까지 살아남는 터치들이 의미 있게 남도록 잠시만 살다 가지만, 사실은 다음 작업의 발판이 되어주는 착한 존재들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자기의 책임을 끝까지 충실히 행하는, 고맙고 가치 있는 나의 조각들이다. 그림 저 밑으로는 더 많은 붓 자국과 선, 면이 얼룩진 채 층층이 숨어있다. 작품을 마무리할 때는 너무 완벽하게 끝내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다음 작품의 실마리가 생기니까.…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살아야 하고, 살고 싶은 나를 위해, 사소한 감정이라도 남겨 두기로 한다.
나의 그림은 이정표가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 순수한 의미로 남겨지기를 기대하며.…
새털처럼 많은 날들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나의 손과 붓을 통해 조금씩 흔적으로 남겨지기를 바라면서, 나의 그림은 나를 데리고 퇴색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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