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가 456백만달러(약60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달항아리가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관련 뉴스기사의 내용/출처)
크리스티 코리아는 현지시각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18세기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가 456만 달러, 우리 돈 약 59억 6천만원에 낙찰됐다고 밝혔습니다. (https://v.daum.net/v/20230322161204402)
https://www.christies.com/features/korean-moon-jars-a-delicate-beauty-12667-3.aspx
(크리스티 뉴욕 홈페이지- ‘달항아리’ 관련 원문)
(크리스티 뉴욕 - 한국 달항아리 관련 번역)
신비롭고 섬세한 아름다움: 한국 달항아리
뛰어난 단순함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정체성이 담긴 역사를 전하는 오브제
조선 왕조 5세기(1392~1897년) 동안 한국은 신유교적 신앙 체계를 따랐습니다. 조선의 도자기 생산은 일반 백자가 지배적이었지만, 18세기 엘리트층이 새로운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하던 시기에는 달항아리를 통해 유교적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하는 도자기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중요성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달항아리는 다양한 이유로 인기를 얻었지만, 유교의 핵심 사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달항아리의 익명의 하얀 표면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반면, 장식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표면에 이미지를 채우는 것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의례용이자 실용적인 물건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백자의 빛나는 흰색은 산화철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특히 정제된 백색 고령토인 백자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918~1392년)의 청자에서 볼 수 있듯이 철분이 조금만 있어도 푸른색 또는 녹색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달항아리에 사용되는 고령토는 최소 2370°F(1300°C)의 훨씬 더 높은 소성 온도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열량 때문에 가마는 10년 정도마다 옮겨야 했는데, 이는 지역 장작 매장량의 고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도자기를 생산하던 도자기 생산단지는 한 번에 100개 이상의 가마가 가동되는 대규모 산업 기업이었죠. 이곳의 도공들은 커다란 바퀴로 항아리의 절반을 만들고, 발로 바퀴를 움직이면서 손으로 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초기 항아리는 윗부분의 입구가 압축되고 둥글며, 후기 항아리는 입구가 더 곧고 높습니다. 두 부분으로 나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반쪽은 중간에서 조심스럽게 결합한 다음 건조되도록 두었으며, 유약을 바르고 완전히 구워지기 전에 낮은 온도에서 초기 가열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완벽한 원형에서 약간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완전히 수작업으로 제작된다는 점이 도자기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공기의 흐름, 유약의 불순물, 온도 차이에 따라 표면에 노란색 또는 장미색 반점이 생기는 등 소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는 요연의 매력적인 구조적 비대칭성을 보완합니다. '가마 안의 변화'를 뜻하는 우리말 요변은 특히 밀집된 가마에서 흙과 불과 같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1709년 이하헌(1677~1724)은 관요의 소성 과정을 관찰하고 그 감상을 시로 남겼습니다: '그릇 이름만 30여 가지.../모양과 빛깔과 질감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없네/모두 다 헤아릴 수 없이 귀하다'.
조선시대의 경직된 사회 제도 속에서 상류층이 장인들이 일하는 곳을 방문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그가 본 것을 시로 기록하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하헌은 이 물건들이 실제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이 물건들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흥미를 느꼈습니다.
'형태, 색상, 품질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모두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 이하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항아리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일본의 학자들과 수집가들이 그 실용성을 넘어 아름다움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예술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장식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던 달항아리는 미술 시장에서 그 희소성을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항아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환기(1913~1974)와 같은 현대 미술가들도 항아리에서 영감을 얻기 시작했고,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에 항아리를 자주 묘사하거나 암시했습니다. 김환기는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을 닮은 이 도자기 형태의 애매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는 단순히 '커다란 흰색 항아리'라는 뜻의 백자대호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용어의 사용은 달항아리가 생활용품에서 보다 조각적이고 관조적인 오브제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전설적인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달항아리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달항아리에서 본 모습입니다. 그는 2020년 유명 현대 도예가 권대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달항아리 중 하나를 구입하면서 "이게 바로 한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권대섭 작가는 오늘날 달항아리를 만드는 신세대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전 세계에 현존하는 작품이 30여 점밖에 없는 조선 시대 달항아리가 수집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조선 시대 달항아리입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달항아리는 단순히 역사 속 한 시대의 정신적 관습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달항아리의 색은 한국 역사에서 흰색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주고, 달항아리의 비대칭, 즉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불완전함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사물들 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완벽한 원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과 더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달은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달을 볼 때 같은 모양을 두 번 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김환기 시인은 1963년 시 '항아리'에서 '단순한 둥근 형태와 새하얀 색에서/신비하고 복잡하고 섬세한 미적 아름다움이 솟아난다'고 썼습니다.
달 항아리에 대한 알랭드 보통의 글- 알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page 42
달 항아리는 쓸모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열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 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함의 이상을 확실히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그로부터 떨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 여기, 겸손함은 항아리 속에 담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탕은 진실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방어하려고 되레 오만이 습관처럼 쌓인 사람이 이 달항아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어떨까. 도자기 한 점 속에 암호처럼 스민 가치들의 보호 아래 다른 삶을 향한 갈망이 움틀 수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예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 되는 균형과 선함을 시의적절하게,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삶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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