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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마을
최하림(1939~2010)
가을이 저물 대로 저물어 꼭지가 떨어지고 나면
돌담의 맨드라미와 피마자들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뒤안 우물도 말라붙어 소리를 죽인다
추수를 끝낸 농부들은
쇠스랑과 쇠갈퀴 써레 괭이들을 헛간에 가지런히 넣고 빗장을 지르고 나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네거리로 나간다
여인들도 그림자를 끌고 마당을 지나간다
시월과 십일월은 잠시 숨을 죽이고 골목을 빠져 나간다
검은 까마귀들이 날개를 치며 논두렁에 내려앉다가 올라간다
아이들이 동구길에서 아우성친다 머리가 파르스름한 사미승이
논두렁 건너 소나무 숲길로 걸음을 재촉하며 간다
아직도 한 뼘쯤 해는 서산에 남아 있고
네거리에서 사람들은 넘어가는 해를 일없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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