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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전시회) <관계항(Relatum)>,이우환, April 4 – May 28, 2023,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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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Ufan
April 4 – May 28, 2023

“현시대가 신이나 ‘인간’이라는 망령 그리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망령이 전세계, 어쩌면 우주론까지 뒤덮으려고 하고 있어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신체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혀진 세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 이우환

1관에 설치된 신작 <Relatum - The Kiss>(2023)를 통해 작가는 의인화된 은유(anthropomorphic metaphor)의 예시를 보여준다. 작품의 부제인 '키스'로 각각이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는 두 개의 돌이 조우하며 접점을 만들고, 각각의 돌을 둘러싼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어지고 교차하면서 교집합의 양상을 만들어낸다. 두 돌이 접촉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쇠사슬의 방향성은 그를 대표하는 회화 연작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강한 역동성을 불러온다. 그는 과거에도 의인화된 은유를 적극 도입한 바 있는데, 1986년에 제작한 <Relatum - Lover)는 두 개의 돌이 그들을 받치고 있는 철판에 의한 경계를 극복하려는 듯이 서로를 향하고 염원하는 형국을 표현하였다.
작가에게 이 같은 일종의 트릭은 작품에 미적 요소를 더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표현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기에 현실이나 일상을 일깨우는 기폭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1 관의 안쪽 전시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Dialogue)라는 제목의 드로잉 4점은 그의 유명한 회화 연작 <Dialogue>를 연상시키는, 정신과 호흡을 극도로 통제하고 가다듬어야만 찍어 내릴 수 있는 커다란 점'과 자연물을 묘사하는 듯한 제한된 수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계항> 조각 앞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여백과 긴장감 있는 구성 앞에서 우리는 사색과 명상에 잠기게 된다.

이들 작품에서 이우환은 드로잉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이용해 극도로 제한된 표현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마치 조각이든 드로잉이든, 철판이든 하나의 선이든, 모두 세계와의 열린 대화로 초청하는 현상들의 파편일 뿐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2관 2층에 전시되는 <Relatum - The Sound
Cylinder(1996/2023)는 강철로 만든 속이 텅 빈 묵직한 원통과 그에 기대어 놓인 돌로 구성되어 있다. 원통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밖으로 숲 속의 새들, 비와 천둥, 산 속의 개울이 만드는 자연의 소리와 에밀레종의 종소리가 공명하듯 흘러나온다. 작가는 물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인공물과 자연석의 개별적인 물성 그대로를 공간에 병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관계가 발생시키는 파장을 관조하게끔 한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파장으로서 '울림'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공기와 같은 매질의 진동을 통해 전파되는 소리, 즉 음파의 성질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이 작품에는 실재하는 효과로서 두 가지의 다른 울림'이 공존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밖에도 2관 같은 공간에는 빈 캔버스와 돌이 마주보고 있는 <Relatum - Seem)(2009)이 설치돼 있다. 전시장의 흰 벽면에 걸린 흰 캔버스는 언뜻 존 케이지의 〈4분 33초)(1952년 초연)나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White Painting>(1951) 등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서구의 문제적 작품들이 각각 비(比)음악(non-music), 비(比)회화(non-painting)를 상징하며 전복 내지는 도발의 의미를 지니는 반면, 이우환이 보여주는 흰 캔버스와 그 앞에 놓인 돌에 깃든 침묵이나 물질적 현존에는 이 같은 완전하고 결연한 발언이 자리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은 조명이 어두운 환경 한 가운데에서 다소 이질적이지만 생산적인 대화로 초대하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실재를 초월하는 대상과의 직접적이고 열린 대화를 통해 묵상하도록 유인한다. 따라서 그에게 작품은 복잡한 상호 관계가 벌어지고 신체가 그것을 지각하는 영역이자 장(場)으로 압축된다.
작품 하나하나가 '무한'을 표현하고 있는 메타포인 만큼,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하나의 거대 서사이자 이론 그 자체인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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