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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국내

겸재 정선 ‘압구정(狎鷗亭)’ 정자의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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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소장본. 간송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만난 겸재 정선의 ‘압구정(狎鷗亭)’
그림 가운데 소나무가 있는 언덕위에 압구정이 보인다.
강 건너편에는 옥수동/금호동이 있고 남산과 삼각산이 있다. 왼쪽에 보이는 산은 우면산인 듯.

압구정도(경북 왜관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장본).
간송미술관 소장본과는 다른 위치에서 그렸다.

그림에선 압구정이 언덕위에 있는데 지금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사이에 그 터만 남아 있다.
위치는 압구정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이 그림을 그리던 그 시절의 한강폭은 지금보다 넓었던 것 같다.
지금 압구정 터에 정자가 있었고 그림에서 보이는 언덕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현대아파트 12동 위치가 맞을 것 같은데,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제방을 쌓고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그림속 언덕이라는 위치를 추축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어 버렸다.

한편, 김수온(金守溫)의 *압구정기(狎鷗亭記)에 따르면 압구정은 처음엔 마포의 서쪽 즉, 여의도에 있던 정자라고 한다. 이를 성종 7년(147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인데, 겸재 정선의 그림 속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압구정기(狎鷗亭記) : 조선 전기 문신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압구정을 기리는 기문(記文)이다.

「압구정기」는 김수온이 한양의 땅이 하늘의 덕으로 만들어진 곳을 찬양하며 시작한다. 고로 하늘의 덕과 은총을 받은 곳이니 명승지가 많다고 하며, 압구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압구정은 “왕도(王都)에서 남으로 5리쯤 가면 양화진(楊花津)의 북쪽과 마포(麻浦)의 서쪽에 언덕 하나가 우뚝 솟아 환히 트이고 강물로 빙 둘러 있어 세상에서 화도(火島)”라 일컫는 장소에 위치해 있다. 압구정은 한명회가 정자로 지어 ‘압구정’이라 편액하기 이전에는 “우양(牛羊)의 놀이터로 되어 위는 민둥민둥하고 아래는 황폐하여 어느 누구도 거기를 사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공(韓公)이 그 위에다 정자를 짓고 노니는 땅”으로 삼음으로써 압구정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고, 승지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렇게 한명회의 덕을 치사하며, 다음으로 압구정자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압구정’이라 이름 붙게 된 유래를 설명한다.
“공이 이 정자에 오를 적에 흰 갈매기가 날아서 울고 지나가니 공은 말하기를, “이상하도다. 갈매기라는 새는 대개 천지와 강해(江海)로 집을 삼고 예나 지금이나 풍월로 생애를 삼아서 뜰 듯 잠길 듯하며 자기들끼리 서로 친근하여, 올 적에는 조수를 따라오고, 갈 적에는 조수를 따라가니 아무튼 천지간에 하나의 한가한 물건이다. 사람치고 기심(機心)을 잊어버린 것이 저 갈매기와 같은 자가 어디 있으랴.” 하였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한림(翰林) 예공(倪公)에게 정자 이름을 청하니 예공이 ‘압구(狎鷗)’로 하기를 청하자 공은 더욱 흔연히 허락하며, “내 정자의 이름으로는 가장 적당하다.” 하였다.”
그런 후에 자신이 한명회로부터 자신이 「압구정기」를 지어 줄 것을 부탁받은 사실을 전하며, 충신으로서의 한명회의 성업을 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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