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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나가는 중
권대웅(1962~)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다
비가 내리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불이 켜지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마음도 바뀌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우선멈춤 서있는 전봇대
어둠 속에서 껴안고 있는
너의 알몸도 지나가는 것이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건너편 서있던 당신이 사라진 것처럼
어디론가 지나간 것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났을까 아뜩하다
한 때 내 몸을 흠뻑 적셨던 소나기들
눈이 너무 부셔
눈물마저도 은빛지느러미처럼
아름다웠던 날들 속으로
눈먼 사랑이, 모닥불이 지나간다
공중에서 일가를 이루던
나뭇잎들이여 먼지들이여
세월의 녹색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순간
어느새 훌쩍 자란 침엽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
이 세상에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는 길
태양이 담벼락에 널려있던
저의 햇빛을 데려간 자리
여름의 목쉰 매미들이 돌아간 자리
그곳으로 가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한다
모두가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모두 지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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