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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그리고 산책에서 찾는 비즈니스의 기회/책 , 영화, 음악, 그림 그리고 전시회

주재선개인전 ,<흙으로 다시 태어난 캔버스, 처음을 그린 사람들>,2024 10.9 -10.14, GALLERY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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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다시 태어난 캔버스,
처음을 그린 사람들>
〈주재선개인전>
2024 10.9 (수) - 10.14 (월)
GALLERY H
알타미라 동굴벽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그림을 통해서 표현했습니다. 파 헤쳐지지 않은 동굴이나 무덤 속에 남아있어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거의 처음의 그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냥대상을 그려서 공동체의 희망과 욕망을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매우 강한 집단적 구속 안에서도 상당히 거칠고 서툰 방식이지만, '나'라는 존재를 고민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에 등장하는 손도장은 자신을 가장 손 쉽게 드러내는 방법으로, 일종의 <사인>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90년대 초반 즈음 중국이 개방하고 얼마 안되 백두산, 동북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를 포함해서 고구려의 무덤벽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살아있는 채도 높은 채색들이 기억납니다. 관리의 허술함 때문에 직접 볼 수 있었던 행운이 있었지만, 안타까워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기개와 포부가, 화려한 색감과 간명하게 디자인된 형태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산, 사람, 동물들, 사냥 장면이나 춤추는 장면들은 유명한 현대화가의 그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응노
이응노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붓 선 한 획으로 면을 만들고, 형태를 만들어, 모여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한 기쁨과 환희, 희망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붓 선은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대학 때, 동백림 사건을 통해 윤희상, 이응노를 알게 됐고,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이상을 찾아가는 '참으로 멋진 사람들 ' 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위는 이응노의 <군상>, 사실 제목이 없는 그림인데, '내 그림의 제목은 모두 평화라고 하고 싶어요 했다고 합니다. 뒷면은 <통일무>를 모티브로, 이상과 현실의 슬픈 괴리를 비정형 도자기에 담았습니다.
(喜怒哀樂 희노애락)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서 표현한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입니다. 기쁘고 / 화나고 / 슬프로 / 즐거운 표현들... '그 감정들은 항상 불완전하다'는 의미로 비정형의 항아리로 감정을 그린 그림들을 가져왔습니다.

喜 희
사랑과 기쁨의 화가 샤갈, <신부> 결혼식 :
샤갈의 그림은 날아갈 듯한 알 수 없는 기쁨과 사랑스러움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상상하게 합니다. 샤갈은 처음으로 상상을 통한 사람들의 감정을 그렸습니다.

怒 노
침략자를 규탄한 피카소, <게르니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작품 <게르니카>, 피카소는 전쟁의 아픔을 통해서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그는 '회화는 집을 장식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의 수단이다 ' 고 했습니다.

哀 애
비극과 고통의 화가 뭉크, <키스><절규> :
또 다른 자신의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린 뭉크는 자기 삶에 대한 상실과 고통의 깊은 감정을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樂 락
낙관주의 혁명가 파울클레,<자화상><장미 :
사물의 극적 단순화에는 풍자와 해학이 들어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낙관과 즐거움, 상상을 줍니다. 클레의 그림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같지 않은 반복, 규칙 안에 불규칙이 균형을 잡아줍니다. 그를 추상회화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의 그림은 항상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그가 가장 급진적인 정치 사건에 자주 연루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이유는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움> 때문입니다.
세잔과 피카소와 고흐가 그랬고, 이중섭과 김환기와 백남준이 그랬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움에 대한 각오를 준 사람(그림)들, 그들은 <혁명가> 이거나 <낙오자>였습니다. <새것>을 찾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해야 가능한 일이고 반드시 반대와 저항이 있습니다. 이를 감당 할 '젊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또 언젠가는, 역사의 긴 줄기 어딘가에서는 환호와 응원도 있습니다. '처음'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을 항아리를 통해서 다르게 해석 했습니다. 캔버스와는 다른, 평면과는 다른, 흙의, 공간의, 항아리의 새로운 느낌으로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김 홍도
신윤복에 비해서 운도 좋고, 출신도 좋아서, 특히 정조의 사랑을 받아 출세를 한 사람이 김홍도 입니다. 김홍도는 여러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그림 중에서 소탈함과 익살이 깃든 서민들의 생활을 다룬 그림들이 압권입니다. 강한 선들과 대비되는 옅은 갈색의 채색은 절제와 여백의 여유를 줍니다.
그의 그림은 조연들을 살펴보는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서당>은 키득대며 구경하는 학동, 빨래터>는 목욕장면을 훔쳐보는 양반, <벼타작> 에서는 술 먹고 누워있는 한량, 아마도 김홍도는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 감독처럼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의 술병에 담았습니다.
장 욱진
이중섭이 종이가 없어서 메모지나 담배 은박지에 작은 그림을 그렸다 하는데, 장욱진은 의도적으로 작은 그림에 몰두합니다. 작지만, 디테일을 놓지 않은 그의 그림들은 크고, 높이, 화려함을 지향하는 세상과 또 다른 자기만의 대화 방식입니다.
작기 때문에, 그 작은 그림 안에, 주관적인 느낌의 중요한 것만 표현합니다. 그래서 더 친근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잔이 처음으로,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면, 장욱진은 처음으로 자기 생각, 동화적인 이상을 그림에 담아 넣었습니다.
폴 세잔
드디어, 세잔에 이르러서 '보이는 그대로' 사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신의 뜻' 보다 '사물의 본질'에 집중합니다. 시점, 원근, 빛의 방향, 칼라 등. '단일 소실점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선 그는 피카소, 마티스를 넘어, 몬드리안, 칸딘스키에 이르기까지 현대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물론, 죽음 10년 전까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기존 질서를 깨려는 도전에 대한 업보 였습니다.
넓적한 항아리에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원근과 중력을 무시한 세잔의 과일을 담았습니다. 세잔을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정복한 남자'라고 하는데, 24년 대한민국에서는 부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중섭
중학교 미술책에서 처음 이중섭의 <소>를 봤을 때, 서울에 오기 전 어릴 적 옆집 살던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뛰어 놀 때 항상 그 친구와 같이였는데, 소 꼴을 먹여야 하는 날에는 같이 놀 수 없었습니다. 울룩룩 힘차게 뒤따라 걸어가던 누렁이를 끌고서 뒤편 산으로 향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중섭의 <소>는 화가 난 듯 온 몸의 근육이 살아있지만, 얼굴 표정은 장난기 있는 '귀여움'도 있고, 심연의 '낙관'도, 굳은 '의지'도 녹아있습니다.
이중섭은 <소> 말고도, 어린 시절 우리네 동네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따라서, 한일(-)자로 표현 한 아이의 눈을 여러 표정과 함께 그리곤 했습니다. 화난, 웃는, 찡그린, 무표정한.... 축약된 선으로 최대한 많은 표정을 그리면 몇 개를 그릴 수 있을까? 했었던, 이중섭은 그리운 고향의 필름입니다.
신 윤복
우리나라 모든 화가 중 첫 손에 꼽으라면 단연, 신윤복입니다. 조선시대로 가서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신윤복입니다.
신윤복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원색적 채색을 사용한 유려함이 있고, 무엇보다 삶 속에 녹아있는 해학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진취적인 기상이 보입니다. '관전'이 아니라 어디든 그 삶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처음으로 일반인 여자를 그렸고(기생을 포함해서) 심지어 성기가 표시된 춘화도를 그렸습니다. 그래서 서민들의 생활을 가장 잘 표현했다 하나 봅니다.
<월하정인>과 <단오풍정>을 신윤복이 차고 다녔음직한 투박한 느낌의 술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천 경자
붉게 칠한 입술과 짙은 눈 회장은 젊은 시절 꿈 꾸었을 설렘이고, 눈 밑의 검은 그림자는 여인으로서 삶의 고단함이고, 머리의 꽃과 나비는, 어머니로서의 위대함. 천경자가 그린 여인들입니다.
그의 여자들은 웃지 않고, 찡그리거나 화를 내지도 않고, 세상의 모든 일에서 떠나 있는 것 같은 무표정이지만, 그렇다고 달관한 도인의 표정도 아닙니다. 일제, 해방과 전쟁을 겪은 '여인으로의 숙명적인 '한'이 눈 밑의 어두운 그림자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랄 것 같지 않은 무표정함으로 녹아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머니, 할머니들의)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가신 어머니 젊은 시절 사진입니다.
프리다 칼로
우리나라에 천경자가 있다면 멕시코에는 <프리다 칼로>가 있습니다. 제 3세계 여성의 공통점으로 보이는 같은 요소들 - 고통, 슬픔, 인내가 있지만, 천경자에 비해 직접적이고, 적극적입니다.
꽃과 나비, 새가 있지만 송충이도 있고, 짙은 화장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진한 검은 눈썹, 피, 가시가 있습니다. 그가 그린 그의 자화상은 체 게바라, 카스트로, 그리고 사파타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를 그린 천경자가 '한‘이라면 이 멕시코 여인은 곧바로 고통과 갈등의 상처들을 드러냅니다. 웃지도 않지만, 울지 않는 그 표정은 물러서고 싶지 않은 '자존심입니다.
딸의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물어봤다면서 '우리 집 가훈이 모야? 했을 때 '자존심을 지키자'라고 했습니다. 달 항아리로 천경자와 비교 해 봅니다.
박 수근
박수근의 그림은 역시, 푸근하고 정겹습니다.
초기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서민들의 생활의 기록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양의 화풍이 아닌 화강암에 점을 찍 듯 그린 새로운 기법으로 자신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흔해 보이는 물 항아리에 '빨래터; 나무와 여인' 등의 소재를 담았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최애 화가 '고흐라는 사나이: 캔버스를 앞에 두고 생각하거나 상념에 잡혀있거나 고민하거나 하지 않고, 붓질에만 몰두하는, 칠하고 칠하고 또 칠해서 물감의 두께가 가장 두꺼운, 색과 색을 섞기보다는 그 색의 느낌을 그대로 끌어오려 했던, 그 중에서도 노랑색을 가장 빛나게 하고 싶었던, 어떻게 평가 받든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리던지 상관없이 나의 길을 가장 고집스럽게 간 사람. 가장 좋아하는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를 항아리에 넣었습니다.
피카소
피카소가 20세기 대표 미술가, '현대미술의 거장' 으로 불리는 이유는 '과거와 단절, 새 시대에 맞는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고, 죽을 때까지 당적을 유지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삶에서도 그러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거침 없이 현실에 도전하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형태로부터 해방>을 가져 온 것은 피카소의 공적입니다.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초기 아비뇽의 처녀들부터, 마리 테레즈, 게르니카 등 여러 그림을 옮겼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에 이르러 드디어 구체적인 형태나 대상 자체를 찾지 않게 됩니다. 그는 느낌이나 분위기를 그렸습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어떤 의미를 탐색하도록 하는...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듯한 그의 그림 요소들은 섬세하게 계산된 위치이며, 질서-혼돈, 조화-대립이 공존합니다.
피트 몬드리안
대학 입학 후 필수과목 첫 시간인 듯 한데, 디자인 과의 단과대학이 왜 '조형대학 ' 인지 장황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자부심 가득한 교수의 설명이, 다 생각은 안 나고, 간결함, 균형 등 몇 가지 키워드와 <몬드리안>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의 그림은 세상을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그러면서도 공존과 균형의 조화를 상상하게 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색들은 검정색을 통해 확실히 구분되어지지만, 그것은 분리가 아닌,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균형잡힌 세계입니다.
"판 항아리'를 통해서 몬드리안의 칼 같은 선과 색을 넣었습니다.
김 환기
김환기의 그림에는 전라도 땅 끝 내 고향 해남이 있습니다. 정신 없이 뛰어 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 파란 바다를 물들이며 잠기던 빨간 해, 저수지 하늘을 떼지어 날던 철새, 천리길 걸어서 국민학교 갔다 오던 길에 보이던, 손도 대지 않고 머리에 큰 짐 얻고 가는 동네 아짐, 자기보다 조금 작은 애기를 등에 업은 아이, 그리고 한참 지나서, 방학 때 내려가면, 동네 초입 마을을 내려다보던 커다란 소나무, 쇠스랑 놓고, 담배 피며 반가워 하던 아재들 달 항아리의 풍성함 안으로 김환기를 통해서 고향마을을 넣었습니다.
김환기는 파란색을 특히나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는 '<Blue>와 H>은 다르다' 고 했습니다.
마티즈가 <심연>이라면, 김환기는 창공>입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새2, <해와 달>, 여인 2, <섬>, <사슴>, <여인> 등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아프리카
피카소는 세잔과, 아프리카의 원주민들 그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사물을 아주 단순화한 표현들 속에는 해학과 즐거움이 묻어있습니다. 사람이 살던 모든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그림을 통해 자기의 삶을 남겼습니다
치우 천황
어려서부터 만화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본 만화가 이현세의 만화였습니다.
북경의 갈가마귀>, <공포의 외인구단>을 거쳐 <두목> <남벌> 그리고 '외설적이다'며 공연윤리위인지의 판정으로 한동안 발간이 중지됐던 <천국의 신화>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중고 책방, 인터넷을 뒤져서 < 천국의 신화> 전집을 모두 사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만화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치우와, 남두육성 단군을 떠 올리며 흥분과 감동 각오를 주었습니다. 투구 모양의 항아리에 치우의 상상 가면을 넣었습니다.
모딜리아니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 중에서 한번만 봐도 잊혀지지 않는 여인이 바로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의 초상입니다.
술과 약에 찌든 난봉꾼이, 열 네 살이나 어린 19살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 비극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길쭉한 얼굴, 사슴처럼 긴 목, 우수에 찬 표정의 여인은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릴게'라고 했던, 모딜리아니의 평생의 연인, 눈동자가 없는 여인입니다. 21세 꽃다운 나이로, 수막염, 알콜중독,마약중독으로 35살에 사망한 남편의 뒤를 따라갑니다.
고흐가 그랬듯이 비운의 천재화가는 죽고 나서 15년이 안되어 '처음으로 사람의 내면을 자기 방식대로 읽어내는' 천재화가가 됩니다. '눈동자 없는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술값으로 그림을 지불하려다 몰매 맞고 쫒겨나는' 놈팽이 환쟁이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됩니다.
원통 항아리의 기울어진 주둥이로, 고개 기울인 모딜리아니의 연인을 옮겼습니다.
큰 모자를 쓴, 노란색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앙리 마티스
피카소가 형태로부터 해방을 주었다면 마티스는 색으로부터 해방을 주었습니다. 채도 높은 '분명한' 색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색을 통해서 새로운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는 '분명한 색'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가위로 그림을 그립니다.
뚜껑이 있는 항아리는 꽃을 많이 꽃을 수도, 적게 꽂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그림세계를 표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티즈의 <블루누드>,<이카루스>, 그리고 <다발> 과 <블루누드>의 결합, 스케치
백남준
졸업 후 그림책 만들던 때, 직원들 다 같이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전시를 봤습니다. '새롭다;
"신기하다; '재미있다 '는 느낌. 전시회를 보고 나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평소의 단체사진과는 다르게 표정,자세,칼라, 방향을 다양하고 재미있고, 신나게 찍었습니다. 백남준은 (기존의 사진 찍는 형식에서) '해방'입니다.
백남준은 50년대 자유주의자들은 진지하고 회의적이지만, 60년대 혁명가들은 낙관적이고 즐길 줄 알았다. 70년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비디오" 라고 했습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2020년대를 백남준은 어떻게 말할까 궁금합니다.
에곤 실레
실레는 당시까지만 해도 금기 시 하던 '성'을 그림의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화가입니다. 때문에 그림을 빼앗기고, 태워지는 모욕도 받았고, 감옥에도 가야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솔직하고 대범한 해방이며, 동시에 절망이고 죽음입니다.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선'을 통해 성에 대한 대한 사람들의 곁눈질을 정면으로 끌고 옵니다. 그의 거의 모든 그림은 낮은 채도의 어두운 색인데, 그림 어딘가에 분홍(색)이 있습니다. 또 그의 그림에는 집중과 분산이 있고, 여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화의 느낌입니다. 고흐가 그랬듯이 역시 우리 선조들이 만든 도자기의 포장지 일본판화그림의 영향입니다. 과감한 형태의 선, 분홍이 있는 죽음의 색; 그리고 '여백'을 통해서, 짧은 생을 살았지만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누워있는 실레의 분홍색 연인을 넓적한 항아리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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