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선집 4권 『일상적인 삶』은 ‘여행’, ‘산책’, ‘수면’, ‘독서’ 등 일상적인 행위와 ‘포도주’, ‘담배’, ‘향수’ 등 생활 속의 사물을 포함하는 총 열두 가지 주제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그르니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따뜻한 울림을 전해 준다. - 믿음사 책소개의 글 중에서
[여행]
여행은 그 의도적인 성격으로 인해 단순한 장소 이동 이상의 무엇이 된다. 여행 가방은 비록 여행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가방이 여행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도 여행을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럴 수 있을까?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간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장 속의 앵무새는 다만 주인과 함께 장소 이동을 할 뿐이다. 그러나 철새는 여행한다.
[산책]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하게 해 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 주는 수단이 아닐까?
[포도주]
“사랑은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인식이 완전해질수록 사랑도 한층 위대해진다. 빛이 태양에서 오는 것처럼 사랑은 참된 앎에서 온다. 그 앎은 사랑하는 자를 사랑받는 자로 나아가 사랑 그 자체로 변화시킨다.
[담배]
내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되며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를 담배를 태움으로써 내 것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그 견고한 세계를 연기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비밀]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더 소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게 비밀인지조차 모르는 바에야 그 비밀의 내용이 잘 지켜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침묵]
통증에 시달리는 자에게 침묵이 어떤 내적인 완화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침묵은 망각을 돕는다. 우리를 갉아먹는 까닭 모를 내적인 고통을 침묵시키려면 그저 침묵하기만 하면 될 때가 많다. 우리 마음속의 고통은 우리가 내뱉는 말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독서]
우리는 사소한 저작들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남는 어떤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저작들을 읽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꼭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우리 속에 남기는 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독서의 목적은 삶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수면]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만, 밤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창조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고독]
모든 소통은 흔히 ‘인격’이라 부르는 것들을 전제한다. 그게 아니라면 거기에는 병렬이나 얽힘 혹은 상호 침투는 있을지언정 결코 주고받음은 없을 것이다. 이 주고받음은 결국 한 인격을 다른 인격 속으로 이동시켜서 그 인격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삶의 근간을 자기가 아니라 타자에게 두는 이른바, 자기로부터의 탈출이다.
[향수]
향수는 감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보다 더 개인적인 것은 없다. 향수에도 유행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어느 것을 공통적으로 좋아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이 원칙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각각의 시대가 자신을 표현해 내는 방식일 테니까.
[정오]
인간은 금지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성역을 만든다. 동일한 것, 동일한 행동이 금지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거룩한 신성의 발현이 된다. 정오의 시간이 감히 어길 수 없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그렇다.
[자정]
그렇지만 나는, 중요하지 않은 온갖 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놓아 주는 자정을 사랑하며, 정오가 오면 우리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는 자정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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