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이 보이는 풍경
임유미 작가 -guerence 나의정원
스페인어로 케렌시아(Querencia)란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며, 최근에는 바쁜 인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guerence 나의정원
길이 안보일때가 있다.
세상이란 밀림 속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지쳐 힘을 잃기도 한다. 그럴 때 나의 경우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쉬는 공간이 그림이었다. 처음 나의 공간은 황량한 사막에 신과 나만이 존재하는 친목할 수 있는 도피의 공간으로 시작했다. 그 안에서 시간을 갖고 숨고르기를 하며 안정을 찾을 때 쯤 어느 겨울 끝자락인 2월 남편이 원하던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했다. 얼었던 땅이 녹아 믈기를 머금자 내가 알지 못하던 수많은 생명들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의 우주를 품고 폭발하는 신비한 그작은 싹들은 마당만이 아니라 내 공간의 모래 속에도 자리 잡고 조금씩 점점 자라나 우거진 작은 정원이 되었다. 생명이 주는 그 작은 에너지의 힘은 정말 우주만큼 커서 아직도 내게 힘을 준다. 살고자 하는 의지에 땅이 주는 힘과 하늘이 주는 환경이 더해져 자라 꽃을 할짝 피우고 열매를 맞는다. 그 열매는 또 다른 시작이 되어 순환하며 존재할 것이다. 자연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 우리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세상의 모든 것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그 것이 이왕 이면 긍정의 에너지 였음 좋겠다. 내가 작은 싹에게서 희망을 얻었듯 영원을 담아 캔버스 안의 설 수 있는 나의 정원을 심는다.
- 작가노트 중에서
장현경작가 - Living Memories
-삶의 기억을 기록하다.-
유년 시절, 접했던 고궁의 단청과 명절날 색동 저고리의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가족, 이것은 언제나 내 삶의 과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나 자신을 반추하고 현재의 삶을 투영시킨 정서가 응집되어 끊임없이 시각적 언어로 표출시키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고궁의 단청과 색동저고리에 대한 과거의 흔적들은 세월이 흘러 색조가 변화하며 보여주듯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이 존재한다. 나는 시각적 매체인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성을 통해 기억이라는 과거의 시간과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있는 단청과 색동저고리 등과 같은 삶의 흔적들을 촘촘히 기록하고 싶었다. 이른바 시간을 상징하는 과거의 기억과 공간을 상징하는 단청과 색동무늬(Multicolored pattern)의 흔적을 응축된 색조로 구현하고자 오방색을 모티브로 삼았다.
과거에 대한 나의 기억은 현재를 사는 내게 자의식을 고취해주는 것으로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 작가노트-
윤선작가
윤선의 작품세계-인체에 담은 삶의 메시지
윤선의 작업은 인체를 통해 서사성을 이끌어내는 이미지 작업으로, 회화와 드로잉적 기법을 2항적으로 대립시켜, 양식(Style)적으로 본다면 회화와 드로잉의 중간 영역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즉 화폭공간에 등장하는 인체(누드)들은 선들이 교차와 중점을 거듭하면서 인체라는 형태의 그 물을 만들고, 이러한 형태들이 대립적 병치를 이루며 구조화된다.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공간에는 아크릴 컬러로 반점과도 같은 터치를 중첩 시켜 화려한 얼룩주의(tachismel(프))적 추상공간을 형성. 주제와 배경의 2항적 대립을 유발시키면서 다원적 공간을 만들어 가는데 이는 2항적 원리를 상호 관계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인체들은 선들의 조직체로서 독특한 제스처를 동반한 체 인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며, 사랑과 미움 고통과 번민. 왜곡과 편견 등에 관계되는 메시지들을 창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체들의 병치는 대립과 갈등 구조를 상황적 프로세스로 전 환시켜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불 때 윤선의 작업은 인간의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 인체를 통한 구체적 상황에서 삶의 요소들을 추출하고, 그 상황을 예술적 형식에 적용시킴으로써, 상황으로부터 사유의 대상(objet)을 만들어 가는 셈이다. 마치 눈물이 슬픔을 반영하는 기호이듯.....따라서 우리가 윤선의 작품을 볼 때 인체의 형태를 미학적이거나 양식적인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체들이 놓여진 상황으로부터 인간의 삶에 대한 요소들을 탐색하고 인체와 인체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관계성을 파악하게 될 때,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또는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글. 김재권 <조형예수학박사 / 미술이론
김율
유영하는 감각 속 조형의 언어
k.yul 작가의 sparadox 속에는 무수한 시선들이 공존한다. 저마다의 시선은 습기 가득한 안개 속을 유영하기도, 서로 충돌해 파괴되기도 한다. 가벼운 듯 거친 그의 선율은 하나의 생명이 되어 마치 스스로 자라나 듯 춤을 추며 요동친다. 그는 의식의 경계에 멈춰 과감히 호흡한다. 들숨과 날숨 간 찰나의 줄다리기에서 새어나온 거친 태동은 무질서속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일렁이듯 보이는 푸른 덩어리 중 어떤 것은 촘촘히 짜여진 섬유가닥 사이를 뚫고 솟아나 스스로 맺힌 것 처럼 보인다.
k. yul의 회화는 의미와 무의미의 긴장 속에서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자아는 목적에 따라 예기된 시간을 영유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속적인 지표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하는 선박과 같은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시간성을 기계적 시간성과 시원적 시간성으로 구분했다. 이는 인간 존재가 존재의 의미를 망각하고 일상에 빠져있는 기계적 시간에서 벗어나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선험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다. 본래적 시간성, 즉 시원적 시간성은 인간이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궁극의 목표를 향한 질서를 지향하도록 만든다. 인간 존재는 각자의 고유한 죽음을 인지하고 삶을 결단함으로써 실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한 실존의 의미를 작가는 작업방식을 일상에 빗대었다. 찌개를 끓인다-는 관념을 실천하기 위해 수식시켜야 하는 관계들로부터 최종적으로 찌개를 실재하도록 만드는 순간까지 어느 하나 우연인 것은 없다. 캔버스 표면을 떠도는 유기체들은 그의 일상과도 같다. 언뜻 보면 분간할 수 없는 형체 같아 보이지만, 저마다 있어야 할 곳에 균형 잡으며 끈덕지게 어우러져 있다. 모여진 유기체들은 작가 과거의 시선이자 감성의 군집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자아로서 생명력을 지녔던 그의 감성 (일상)이 그의 손끝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있었던 것'(유기체)이 되고 그의 의식의 흐름으로부터 독립된다. 일상 속에서 그를 실존시켰던 의식의 흐름 은 이젠 다른 것'이자 과거로써. 현존하는 감성을 직시하게 만들고 다시 탄생될 새로운 지표와 조우시킨다.
k.yul의 감성은 다시 물감이 되어, 찌개가 되어, 일상이 되어 생활의 형태를 이룬다. 이렇듯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순환 속에서 축적되는 있음과 있었 음'의 나선을 통해 그 만의 세계를 형상화 시킨다. 순환과 통찰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손놀림은 재빨라지고, 유기체는 점멸하듯 탈바꿈된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무수한 시선과 감성은 점차적으로 제각기 춤을 추며 캔버스로 옮겨진다. k.yul 고유의 푸른 언어로 재현된 작품 속 자신들은 여전히 캔버스 위를 유영하며 서 로를 맴돌고 있다.
글- 산일(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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