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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빈방으로
최하림(1939∼2010)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입니다 대쪽 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겨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허송(虛送)
임강빈(공주,1930~2016)
등기 소포나
택배(宅配)로 보낼까 했습니다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보낼 것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세월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일입니다
슬픔 자체가 세월입니다
외로움도 매한가지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지만
짐이 점점 커져서
보내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섭섭하다거나
야속타 하지 마십시오
뼈아픈 허송 세월은
빼기로 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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