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대치동
대치동 일대는 1963년 행정구역의 확장으로 서울에 편입되기 전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였습니다. 언주면은 위로는 한강, 아래로는 양재천 사이에 위치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언주면은 한양과 중요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곳 에는 왕실의 묘인 선릉과 정릉이 조성되었으며 왕실 사찰인 봉은사가 건립되었습니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풍광은 한양 사람들로 하여금 한강을 건너오게 하고, 시름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 사업으로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아름다운 풍광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개발의 여파 속에서도 옛 모습을 지켜온 대치동 구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원 마을의 공간구조를 유지한 채 일부분씩 개발되어 옛 시골길의 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주택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오래도록 간직해온 동네의 흔적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치동 구마을 주민들은 사라져가는 마을의 옛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기억지도를 제작하고, 구마을 사람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은행나무 제례 등 전통 행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치동 일대는 수해에 취약한 곳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하게 형성되어 범람이 잦은 탄천과 양재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25년에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로 언주 면에 위치한 촌락들이 모두 잠긴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 가난의 상징인 봄보리가 주요 작물로 재배되었습니다.
*을축년 대홍수: 1925년 여름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홍수로 한반도 전역이 피해를 입었으며, 그중에서도 한강과낙동강 일대가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옛 한티마을에는 '쪽박산 '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었습니다. ‘쪽박’은 ‘살림이 거덜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잦은 수해를 겪었던 한티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척박한 삶을 산에 투영하였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상정과도 같았던 ‘쪽박산’은 수해를 막기 위한 제방 조성공사에 흙을 제공함으로써 지금의 아파트 숲 대치동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쪽박산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대치동 최초의 아파트인 신해청아파트 (현 대치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대치동은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채워졌습니다. 이에 발맞춰 급격하게 늘어난 아파트 거주민들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감당하기 위해 아파트 상가의 발전도 이뤄졌습니다. 현재도 아파트 상가는 대치동 주민들의 일상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상가는 도시의 일상을 이루는 대표적인 생활공간입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인 1970년대 중반 대치동에는 2층 이상의 상가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대규모 공동주택이 형성되면서 은마종합상가를 비롯한 주요 아파트 상가들이 들어섰습니다. 초기에는 아파트 단지 일대가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입주민들의 소비는 대부분 상가에서 이뤄졌습니다. 대치동 상가 중 은마종합상가는 현재까지도 초기 구조를 유지한 채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대치동의 터줏대감 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남이 나날이 개발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부족한 강남으로 이주하길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강북의 일부 명문 중•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특단의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부지가 협소하고 시설이 노후화된 학교들은 강남 이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78년에는 휘문고등학교가 대치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1990년 대까지 20여 개의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강남에 새롭게 설립된 학교들도 강북에서 이전한 학교들과 함께 명문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2021년 강남구에 등록된 사설학원은 2,383개입니다. 이는 서울시 전체 사립학원 수의 17%에 해당합니다. 서울시 자치구 중 사립학원 비율이 10%가 넘는 곳은 강남구가 유일 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의 학원은 대치동에 있습니다. 또한 대치동 학원의 수강생 범위는 전국적이므로 대치동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형성되기 시작한 대치동 학원가는 대치동과 주변 지역의 풍부한 교육 수요 층을 바탕으로 변화무쌍한 입시제도에 맞춤형 전략을 제공함으로써 빠르게 성장해 갔습니다. 입시 전형이 다양해질수록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세분화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입시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육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학원업 종사자들은 성공을 꿈꾸며 학원가로 몰려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무게는 얼만큼일까요? 우리는 가정, 직장, 학교 등 각자의 위치에서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대치동에서도 여러 인생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잦은 수해로 먹을 것이 없어 가정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과거 대치동 사람들의 무게, 자식 교육을 위해 값비싼 대치동의 학원비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는 학부모들의 무게, 대학 합격이라는 좁은 문을 뚫기 위하여 밤낮없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의 무게. 모두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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